모두가 알다시피 기후변화는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입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인식 변화와 그에 따른 일상에서의 실천, 정부와 민간 기업의 의지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유네스코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 과학협력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 폭우, 가뭄, 홍수 등 극한의 기상이변이 전 세계적으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을 통해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찾아가고자 하는 국제기구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국제 과학협력 분야 중에서도 ‘물’은 기후변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핵심 협력 분야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후 현상이 주로 물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고, 해양과 연안 생태계가 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블루카본(Blue Carbon)의 역할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유효한 방안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는 일찍부터 물 분야 국제협력을 주도해 왔습니다. 유네스코의 대표적인 물 분야 활동으로 우선 ‘정부간수문학프로그램(Intergovernmental Hydrological Programme, IHP)’을 꼽을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물과학 발전과 지속가능한 수자원 관리를 위해 1975년에 IHP를 설립했습니다. IHP는 유엔 체제 내 유일한 물 분야 정부간기구로서 ▲깨끗한 식수 확보 ▲홍수 예방 ▲빙하 보존 ▲수질 개선 등을 위해 전 세계 과학자와 정책결정자의 협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물 분야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유네스코는 ‘정부간해양학위원회(Intergovernmental Oceanographic Commission, IOC)’를 통해 해양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IOC는 해양 및 연안 지역의 특성과 자원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높이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각 회원국의 정책결정, 지속가능한 발전, 해양 환경 보호를 지원하기 위한 국제협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1960년에 유네스코 내 설립된 IOC는 꽤 독특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OC는 이른바 ‘기능적 독립성(functional autonomy)’을 보유하기 때문에, 유네스코의 내부 조직이면서도 상당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IOC는 자체 회원국을 보유합니다. 유네스코의 회원국은 194개국이지만 IOC는 152개국이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두 번이나 유네스코를 탈퇴했을 때도 IOC에는 회원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IOC의 기능적 독립성 덕분이었습니다. 내년 12월 31일에 공식적으로 발효될 세 번째 유네스코 탈퇴 이후에도 미국은 IOC에 남아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기구 안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IOC에는 자체 사무총장(Executive Secretary) 역시 있습니다. 물론 IOC의 사무총장은 유네스코 안에서는 한 명의 사무총장보(Assistant Director-General, ADG)로 간주됩니다. 이처럼 독특한 특성을 지니는 IOC는 그만큼 해양 분야의 전문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엔 내에서 ‘2021-2030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해양과학 10년’의 조정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물 분야 활동은 수자원 관리에서부터 해양과학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며, 고도로 전문적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유네스코 물 분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선도적인 회원국으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한국은 2002년부터 IHP 이사국으로 선임되어 활동해 왔고, 아태지역 의장국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6월 12일에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IHP 50주년 및 물 과학 6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은 ‘물 과학과 협력 50년 그리고 그 이후’를 주제로 한 부대행사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환경부 주최로 전체 리셉션도 열어 IHP 분야에서 한국의 선도적 입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난 제33차 IOC 총회(6.25.~7.3.)에서는 한국의 박한산 박사(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인도네시아 해양과학공동연구센터장)가 아시아태평양지역 그룹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는데요. 한국이 그간 아시아 지역의 블루카본, 해양위성 등의 분야에서 공동연구와 국제협력을 펼치며 사무국과 회원국들로부터 쌓아온 신뢰가 선거 과정에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분쟁이나 재난이 발생한 이후에 긴급 대응을 하기보다는 사전 예방을 위해 더욱 노력하는 유엔 전문기구입니다. 물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장기적인 안목과 호흡으로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수자원과 해양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유네스코의 여정을 함께 하는 핵심적인 회원국이기에, 물 분야는 한국의 관련 전공자와 전문가가 기여할 여지가 높은 전략 협력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유연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물질인 물. 이러한 물을 다루는 유네스코의 여정에 더 많은 한국인이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