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의 올바른 보존 방법이란? 알아두면 어디서든 쓸 데 있는 유네스코 잡학지식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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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에드워드 커티스가 찍은 아메리칸 인디언 족장의 딸 앤젤린 공주 (출처: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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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진 속 인물은 1896년 미 서부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 ‘시애틀(Seattle)’족 족장의 딸 ‘앤젤린 공주(Princess Angeline)’입니다. 얼굴 가득한 주름,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깊고 검은 눈, 회한이 서려있는 듯 비뚜름하게 다문 입술… 오랫동안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속절없이 빼앗겨야만 했던 북미 원주민들의 가슴 아픈 역사와 사라져 가는 기억의 한 조각이 담겨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사진은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민속학자인 에드워드 커티스(Edward S. Curtis)의 작품으로, 그는 1901년부터 1930년까지 30여 년간 미 서부 80여 개 부족을 방문해 그들의 신화와 민속, 사회구조, 종교, 노래, 언어 등을 사진과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 내용을 펴낸 『The North American Indians』는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의 소중한 기록물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커티스는 원주민에 대한 고정관념과 그릇된 이미지를 만들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일조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그는 원주민들의 순수함, 혹은 때묻지 않은 원시성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사진 속에서 탁상시계 같은 현대적 문물을 지워버리기도 했고, 민속 춤을 추는 장면 등을 찍기 위해 모델료를 주고 원주민들을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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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 천막 안에 ‘작은 깃털’과 그의 아들 ‘노란 콩팥’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찍은 커티스의 기록사진. 원본에서 보이는 둘 사이에 있는 탁상시계가 출판본에서는 지워져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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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의 양면적인 모습은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일의 어려움, 그리고 그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오늘날 보호받고 있는 수많은 유산들은 지배자와 침략자의 시선 혹은 의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원주민들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 속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며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발전시키고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합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 파판(Chris Pappan)과 클리 베널리(Klee Benally)와 같은 아메리카 원주민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예술 활동을 통해 오래된 고정관념과 잘못된 이미지를 해체하고, 오늘날의 현실 속 원주민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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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후반 작가이자 음악가, 교사, 작곡가, 여성참정권 운동가로 활동한 아메리카 원주민 지칼라-사(Zitkala-Ša)의 모습을 담은 2021년 2월 22일자 구글 두들(google doodles; 특별한 날을 맞아 장식한 구글 로고). 크리스 파판을 포함한 아메리카 원주민 예술가들이 이 작업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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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유산을 보호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고, 그것을 보호·관리하는 주체는 누가 되어야 타당한 것일까요? 2024년 6월, 아일랜드 골웨이에서 열린 ‘제7차 비판적 유산연구협의회(Association of Critical Heritage Studies, ACHS) 국제컨퍼런스’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연구 결과들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기된 몇 가지 질문들을 정리해 보면서, 유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한층 넓혀 보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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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의 유산 보호 시스템, 이대로 괜찮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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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 참가한 다수의 학자들은 1972년 제정된,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세계유산협약)의 이행을 주도하고 있는 유네스코가 과연 인류 유산의 수호자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대중의 눈에 유네스코는 세계의 유산 보호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멋진 조직으로 비치고 있지만, 실상 유네스코 내에서 유산은 회원국 간 평화를 깨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권위주의적인 거버넌스 체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역량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때문에 유산의 보호와 관리를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와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이델베르그대학교의 토머스 슈미트(Thomas Schmitt) 교수는 대체로 관리 상태가 양호한 유산만을 선별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현재 유네스코의 유산 보호 시스템은 파괴나 훼손으로부터 취약한 유산을 보호하는 데 있어 체제 자체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슈미트 교수를 비롯한 학자들은 유산의 보호관리 책임을 유네스코 및 회원국에만 위임하는 대신, 사회 전체가 유산 보호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참여와 협력의 기반을 쌓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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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과 가치까지 포용할 수 있는 유산 보전 방법은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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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립대학교의 세스 아수마(Seth Asumah) 교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과 삶을 서로 연결되어 순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아프리카 전통’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유산을 기념하고 보호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의 영광과 아픔, 현재의 도전과 기쁨, 미래의 희망과 불안을 모두 아우르는 포용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아수마 교수는 물질적으로 유산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유산과 관련된 모든 정체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차이를 결핍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사회 정의와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바라보고자 하는 오늘날의 문화 다양성 논의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이를 통해 유산 연구는 단지 학문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현실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포용적인 유산 해석과 보존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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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대학교의 루언 리스(Leuan Rees) 박사는 그동안 대부분의 유산 관리 접근 방식이 유산을 그저 건축 환경 안에 있는 물리적이고 유형적인 요소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리스 박사는 이와 같은 시각에서는 유산의 보호 및 보존의 초점이 관련 규제의 틀 안에서 엄격히 ‘관리’하는 일에만 머무를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유산의 연구와 관리에 더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최근 몇 년 동안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가 점진적으로 증가했음에도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산 관련 계획 수립 및 이행 과정에 도시 계획자와 유산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지역 연구에 있어 연구자 중심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 중심으로 연구가 기획·실행돼야 하며, 연구의 방향성 역시 연구 결과나 질보다는 해당 커뮤니티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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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후스대학교의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교수는 다양한 도전을 받고 있는 오늘날의 박물관의 역할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비 교수는 박물관이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상징인 영국의 아이언브릿지 계곡으로부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변형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이는 오늘날 기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산업혁명과 기후변화의 역사가 식민주의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박물관은 이러한 서구 중심적인 시각으로부터 탈피해 새로운 방식으로 유산을 다룸으로써 유산 보호라는 기존의 역할을 넘어 더 넓은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산 보존이란 단순히 과거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지혜를 찾는 과정임을 새삼 되새기게 해 주는 지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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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을 통해 과거사를 극복하고 미래를 이야기할 방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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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의에서 탈식민주의와 관련된 연구들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출생지나 관련된 지역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유산의 보존과 재구성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역사적 정의와 정치적 인식 변화를 포함하는 복잡한 과정임을 강조했습니다. 스위스 북서부 응용과학예술대학의 로베르타 버샤트(Roberta Burchardt)는 식민지 시대 유산을 보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위 ‘지배자’적인 시선에서 설명되고 기술된 이야기를 넘어, 기존의 체제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함한 다양한 관점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식민지의 역사적 부채를 인정하고 현대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직시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식민지 시기의 폭력과 불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게 될 때, 유산 보호는 비로소 건축물이나 유물의 보존을 넘어, 그것들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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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를 마치며
4일 간 학회에 참여하면서 접한 강렬한 질문들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역사와 유산’들을 둘러싼 여전히 식지 않은 뜨거운 논쟁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경험했고 또 경험하고 있듯, 유산은 그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현재이며, 아직 쓰이지 않은 미래입니다. 유산 보호가 단지 과거를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설계하는 일이 될 수 있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만드는 것은 단지 유네스코나 회원국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라, 유산과 역사의 당사자이자 목격자이자 서술자인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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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유네스코. 가장 빠르고 유익한 근황 업데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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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이번 여름 휴가는 어땠나요? 휴가와 여행은 우리에게 늘 꿀맛 같은 휴식과 남은 한 해를 버틸 힘을 주지만, 이 기간에 사람들이 많이 다녀간 관광지들은 저마다 다양한 문제로 몸살을 앓기도 해요. 지난 7월 말에는 세계적인 관광 대국 스페인에서 시민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제발 그만 좀 오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관광은 지역사회의 경제적 버팀목이면서도 주민들의 일상과 현지 자연·문화유산의 지속가능성에 위협이 되기도 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어요. 그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기구들과 정부들은 ‘과잉관광 (오버투어리즘, overtourism)’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대책을 세워 왔고, 관광객들도 단순히 소비하고 먹고 마시는 여행이 아니라 현지의 자연과 문화를 보존하면서 그것들과 긴밀히 소통하는 여행을 점점 더 추구하고 있어요. 자연과 문화와 지역 사회, 그리고 관광객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트렌드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이 쉽지 않은 일을 해내기 위해 세계의 관광지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요? 세계경제포럼 미래지속가능관광 미래위원회 공동의장인 조지프 치어 (Joseph M. Cheer) 호주 웨스턴 시드니대 교수가 『유네스코 꾸리에』 7-9월호에 기고한 글(일부 발췌, 수정)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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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로 가득한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풍경 (saiko3p /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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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관광이란 무엇일까요? 2019년에 펴낸 책 『Overtourism: Excesses, Discontents, and Measures in Travel and Tourism(과잉 관광: 여행과 관광의 과잉, 불만족, 그리고 대책)』에서 저는 그것을 ‘방문객이 너무 많아지면서 그 결과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혹은 시즌에 따라 생활양식이 변하고 필요한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고 전반적인 삶의 질이 나빠지는 등의 고통을 겪게 되는 상태’라고 정의했습니다. 이처럼 지역이 감당할 수 없는 관광의 개념은 항공 교통이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1963년 독일 지리학자 월터 크리스탈러(Walter Christaller)는 급증하는 관광 수요를 우려하면서 “어떤 지역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그곳을 언급하기가 점점 꺼려진다”고 말했고, 1975년 루이스 터너(Luis Turner)와 존 애시(John Ash)는 『The Golden Hordes: International Tourism and the Pleasure Periphery(황금의 무리: 국제 관광과 쾌락의 주변부)』를 펴내면서 돈을 들고 세계 각지로 떠나는 관광객들의 무리를 “문화를 파괴하는 야만인”으로 비유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황금의 무리’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관광업은 전 세계 GDP의 9.1%, 약 9조9천억 달러를 차지하면서 지역과 국가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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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과잉관광으로 신음하는 지역은 세계 도처에 있고, 다양한 형태로 지역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발리에서는 생활물가가 상승하고, 지역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에서 과한 행동을 하는 관광객들로 인해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관광객 증가 속도를 사회 인프라가 따라잡지 못하면서 교통 체증도 심각해지고 수자원 고갈 우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환경 훼손도 문제입니다. 보라카이와 코모도섬 등 동남아 여러 유명 관광지들에서 볼 수 있듯, 사회 및 생태 환경이 외부 충격에 쉽게 영향을 받는 소규모 섬 지역에서 이러한 점이 두드러집니다. 대형 크루즈선 관광 역시 과잉관광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데요. 세계적 크루즈 관광지이기도 한 베니스에서는 크루즈선이 정박하는 특정 지역에만 관광이 집중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과잉관광의 충격은 지역과 국가에 상관 없이 점점 일상적인 일이 되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휴가철을 노린 임대업이 성행하고, 기존의 주민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주변부로 밀려나고, 작은 개인 가게들이 있던 자리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똑같은 사진 찍기에 바쁜 관광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애초에 그곳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 준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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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관광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역사회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왔고, 그 방법도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책이 장기적으로 성공인지 실패인지 여부는 수 차례의 관광 시즌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중에는 이미 일정 부분 효과가 나타나는 대책들도 있습니다.
크루즈선의 기항 횟수를 줄이거나 아예 금지시킴으로써 ‘당일치기 관광객’의 숫자를 줄이는 것은 과잉관광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에 도시 중심부에 있던 크루즈선 터미널을 외곽으로 옮겨서 효과를 보고 있는 암스테르담이 그 예입니다. 특정 장소에 집중되던 관광객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장소로 분산하는 것도 효과가 있습니다.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앞에 모인 관광객들의 동선을 그 주변 다른 작품들로 자연스레 유도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고, 암스테르담은 유명 셀카 장소였던 ‘I Amsterdam’ 표지판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관광 당국은 여행 계획을 짜는 관광객들이 더 다양한 장소를 찾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되고 있습니다. 휴가철 단기 임대업을 등록제나 허가제로 전환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으며, 늦은 시간의 소음과 수면 방해를 방지하기 위해 통행금지 시간을 두는 곳도 있습니다. 보라카이섬 같은 곳은 자연 환경이 회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일정 기간 관광지를 폐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공 사례들에 비해 관광객들에게 일종의 ‘여행세’를 걷는 것은 과잉관광의 충격을 줄이는 데 상대적으로 덜 효과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관광객에게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요금을 부과하는 베니스와 일본, 그리고 모든 관광객에게 비자 발급을 요구하는 발리 등에서 이러한 관광객 대상 과금은 관광객 숫자를 제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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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관광에 대처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마련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관광이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그 장소에 변화와 충격을 남길 수밖에 없다면, 결국 그것을 적절히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역 사회와 관계 당국은 무엇을 지키고 이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지를 두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합니다. 방문자 수를 줄이는 방법은 그것이 지역 경제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세심하게 마련돼야 합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규제를 시행하는 것과 지역 사회의 안녕을 지키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언제나 만만치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관광이 올바르게 이루어질 때, 그것이 지역 사회의 장기적인 번영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론리 플래닛의 공동 설립자 토니 휠러(Tony Wheeler)가 말했듯, 세상에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도시 하나 하나마다 그런 장소들을 부러워하는 소외된 커뮤니티가 여남은 개씩 있기”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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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지속가능한 관광
세계 각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이트에서도 유산 지정 이후 관광객 유입이 크게 늘면서 여러 고민 거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지나친 관광객 밀집과 환경 훼손, 지역 자원 고갈 등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관광객 관리에서부터 효과적인 유산 해석 방안과 혁신적 대책 마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와 공동으로 ‘ 세계유산 여행’ 플랫폼을 마련해 유럽 내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네스코 유산 지역을 알리고 있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유명한 세계유산인 ‘모스타르 (Mostar) 구시가’에서는 지역 당국과 함께 관광 밀도를 분산시키기 위해 관광객들이 도시에 더 오래 머무르면서 더 많은 문화적 체험을 하도록 장려하는 ‘모스타르 패스’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2023년에는 도심으로 들어가는 관광 버스에서 자동으로 관광세를 걷는 전자 납부 시스템을 두 지역에 설치하기도 했고, 캄보디아의 앙코르에서는 ‘Cash for Work’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의 보트 투어 커뮤니티에서 일자리를 마련하고 관광을 분산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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