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에 관한 유네스코 상식 🏛️ 알쓸U잡 | 알아두면 어디서든 쓸 데 있는 유네스코 잡학지식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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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대성당 #유산복원 #진정성 #세계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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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인 노트르담 대성당에 큰 불이 났습니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 그것도 세계유산을 관장하는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곳에서 세계유산(1991년 등재)이 불타버린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는데요. 그로부터 5년 반이 흐른 지난해 12월 8일, 마침내 노트르담 대성당은 복원 공사를 마치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누구보다 이 소식을 기다렸던 주재관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지난 5년 간의 복원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불타버린 유산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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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4월 15일 대화재 발생 저녁에 발생한 화재는 순식간에 성당 지붕으로 번졌습니다. 파리 소방대가 총출동해 불길을 막으려 했지만 결국 대성당 첨탑과 지붕은 무너지고 말았죠. 화재 원인은 아직까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시 개보수 작업을 진행 중이던 첨탑 근처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아,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실화나 전기 합선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 2019-2020년 기부금 모금 및 복원 계획 수립 충격적 화재 이후 전 세계에서 한화로 약 1조 원이 넘는 규모의 기부금이 모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되었고, 대성당이 1991년에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만큼 유네스코도 그 과정을 주시했어요. 특히 유네스코는 이번 복원 과정이 건축물과 그것을 만든 장인들의 전통 및 문화의 연결성을 더욱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복원 과정을 적극적으로 살펴보면서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 2023년 첨탑 복원 시작 복원 방식 및 설계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19세기 건축가 비올레 르 뒥(Viollet-le-Duc)의 원래 설계 그대로 첨탑 및 지붕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 2024년 2월 주요 구조물 복원 완료 파리 올림픽 개막을 몇 개월 앞두고 첨탑과 목조 지붕을 비롯한 성당의 주요 구조물 복원이 마무리되었습니다.
- 2024년 12월 8일 재개관식 개최 마침내 대성당이 대중에게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이제 관광객들도 성당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고 미사도 다시 열리고 있지만, 정원 및 일부 공간의 복원은 2026년까지도 이어질 예정이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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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나은 모습으로? 원래 그대로? 유산 복원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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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 지붕에 수영장을(?!) 대성당 복원 과정에서 가장 큰 논쟁은 복원의 방향을 두고 벌어졌습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현대적 모습(으로의 복원)”을 언급하고 대성당 재건자문위원장이 여기에 호응하면서였죠. 하지만 2013년부터 노트르담 총괄건축가로 일해온 필리프 빌뇌브 등은 대성당이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돼야 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전 세계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데요. 심지어 스웨덴의 한 건축회사는 성당 지붕에 루프탑 수영장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까지 내놓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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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한 조건들 노트르담 대성당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일부인 만큼, 이러한 논란에 대한 유네스코의 시각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유산의 보존 및 복원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베니스 헌장(기념물과 사적지의 보존, 복원을 위한 국제헌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64년에 만들어진 이 헌장은 유산 복원 과정에 현대적 기법을 가미하는 것에 엄격한 시각을 갖고 있는데요. ‘전통 기법이 부적합하다고 판명된 경우, 그 효능이 과학적인 자료에 의해 밝혀지고 경험으로 검증된 현대적 보존 기법과 건축 기법을 사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10조). 하지만 반영구적인 석조 건축물이 다수인 유럽에 비해 목조 건축물이 많은 동아시아 등지의 유산에는 이와 같은 잣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그 결과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994년에 채택된 ‘진정성에 관한 나라 문서(Nara Document on Authenticity, 이하 ‘나라 문서’)’를 유산의 진정성(authenticity)을 판별하는 토대로 삼고 있습니다(「세계유산 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 II.E.79장). ‘베니스 헌장의 정신을 기반으로 전 세계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증대에 발맞춰 그 내용을 확장’했다는 내용이 전문에 실려 있는 이 문서는 문화유산의 진정성 조건에 다양한 지역적 맥락과 문화가 반영돼야 함을 강조하면서 ‘고정된 기준에 따라 그 가치와 진정성을 판단하기란 불가능하다’(10조. 「세계유산 협약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 부록4) 라고 규정합니다. 복원된 대성당에 당대의 문화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다는 쪽도, 원래의 모습을 완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쪽도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때문에 화재 직후 프랑스 정부와 면담한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대성당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면서도 ‘그것이 꼭 이전과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 진짜 문제는 협의와 시간 이렇게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시간이 흘렀고, 어느 쪽이든 파리 올림픽 전까지는 복원이 완료되기를 원했던 프랑스 정부는 결국 원형 그대로의 복원을 결정했습니다. 다수의 유산 전문가들과 프랑스 국민의 과반수 이상(54%)이 원형 유지를 선호하기도 했죠. 설령 수백 년간 보존해 온 문화유산의 복원에 현대적 관점을 반영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일을 공동체 내에서의 충분한 협의 없이 마감 시한을 정해두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에 있어 문화적 다양성과 상대성을 강조하고 있는 나라 문서에도 ‘문화적 가치가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려면 모든 당사자가 해당 문화적 가치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10조)고 명시돼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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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당을 복원할 장인을 찾아라 대성당을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자,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불타고 훼손된 부분(목재 지붕과 첨탑 등)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을 확보하는 일이었습니다. 대성당은 1345년에 처음 완공된 이후 700여 년에 걸쳐 파괴와 복원, 수리와 증축이 반복돼 왔는데요. 특히 이번 화재로 완전히 무너진 첨탑을 포함한 주요 부분은 프랑스 중세 고딕 건축양식의 권위자였던 비올레 르 뒥이 1844년부터 1864년에 걸쳐 시행한 대규모 개·보수 공사 때 지어진 것이었기에 이 시기에 대한 자료와 건축 지식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 ‘콩파뇨나주’, 대성당 복원의 마지막 한 점 마침 프랑스에는 특정한 지식과 정체성을 작업장에서 전수하는 일종의 직업 훈련 네트워크인 ‘콩파뇨나주(Compagnonnage; 미숙련 직인조합)’가 무형유산으로서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석재와 목재, 금속, 가죽, 섬유, 식품 등과 관련된 지식과 노하우를 전승하는 독창적인 방식인 콩파뇨나주는 2010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죠. 이 네트워크를 통해 프랑스가 자랑하는 요리와 명품, 건축 등의 노하우가 다음 세대로 잘 이어져 왔고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축과 장식 및 예술품에 관한 지식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지식과 전통과 기술을 보전해 온 이들 네트워크 소속 장인과 제자들은 대성당의 다양한 재료를 용도에 맞게 가공하고, 다양한 전통과 문화적 의미를 지닌 장식물을 원 모습 그대로 만들어 냈습니다. 여기에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보다 현대적인 방재 체계까지 갖추고, 대성당은 마침내 파리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유네스코는 벅찬 마음으로 그 소식을 전하면서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이번 복원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됐다”라 평가하고, “올 한 해 동안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복원 과정에서 새로 배운 내용을 정리해 전 세계의 유산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삼을 것”이라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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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0일, 콩파뇨나주 소속 장인과 교육생들이 소실된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 구조와 동일한 기하학적 구조의 트러스를 들어올리고 있다 (출처: 노트르담 복원 안내 웹사이트] © Marie-Amélie T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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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이 서로를 돕다 - 수원 ‘화성’의 사례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 과정에서 드러났듯, 전 세계의 공동체들이 지켜온 다양한 형태의 유산들은 저마다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더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특히 어떤 유산이 재난으로 파괴되었을 때, 이를 완전성과 진정성을 갖춘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다른 형태의 유산들이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유형유산과 무형유산, 그리고 기록유산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복합적인 ‘총체’로서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므로 이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그러한 예는 멀리 프랑스까지 갈 것 없이 우리 가까이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자랑스런 우리의 성곽 유산, 수원 화성(華城)이 그 사례입니다. 화성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는데요. 상당 부분이 현대에 와서 복원된 화성이 유산으로서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인정받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 의궤 (儀軌)」의 일부인 「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였습니다. 화성은 기존의 조선 시대 성곽과 구분되는 새로운 모습과 사상이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충분하지만 6·25전쟁과 6-70년대의 난개발의 과정에서 상당 부분이 파손됐었는데요. 다행히 ‘기록 덕후’ 조선 왕실은 화성 축조의 전 과정을 담은 일종의 공사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를 남겨 두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사용된 기술과 재료 및 성곽의 위치와 모습이 정확하게 담겨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공사에 참여한 장인과 인부들의 인적사항, 예산, 임금까지 기록돼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토록 상세한 기록 덕분에 화성은 현재 복원된 모습의 완전성과 진정성을 오롯이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당 기록물에 쏟아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사보고서”라는 극찬이 과장이 아닌 이유이며, 문화유산이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우리의 오늘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이유일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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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옛 모습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화성성역의궤에 담긴 그림(圖說, 도설)과 오늘날 화성의 모습 (출처: 수원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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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Talks | 인사이트가 필요하다면? 유네스코가 만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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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뉴스레터에 실린 인류세 이야기가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도 다뤘듯, 인류세는 비록 공식적인 지질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 논의에 담긴 의미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화두를 계속해서 던질 텐데요. 그래서 이 문제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왔고, 누구보다 큰 열정을 갖고 있는 전문가인 박범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인문사회·자연과학분과위원장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기대한 대로 박 위원장은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류세에 대해 할 말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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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순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인문사회·자연과학분과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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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인류세 관련 사안을 다루어 온 국내 대표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으로서, 지난해 세계 지질학계가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공인하는 문제를 최종적으로 기각한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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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저는 “아쉽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세의 층서학적 증거를 모으기 위해 지난 수 년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찾아 헤맨 끝에 가장 유력한 대표 지층을 제시했던 과학자들은 무척 허탈했을 것입니다. 층서학회 제4기 소위원회에서의 토론 및 투표 과정이 그다지 공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이 과정에서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드러나겠지만 어쨌든 인류세의 시작점이 1952년이라고 할 때 70여 년에 불과한 지질시대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지구시스템과학의 관점에서 본 행성적 변화의 증거를 지층의 암석 증거를 기반으로 하는 층서학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라는 분야 간 장벽 문제도 있었습니다. 만약 인류세가 2024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공인되었더라면 지구의 역사에 관한 초중고 교과서와 각종 전시물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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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뉴스레터에서도 언급했듯, 인류세를 둘러싼 논의는 오히려 과학의 틀을 넘어 앞으로도 더 넓고 깊게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인류세연구센터는 이미 과학자뿐만 아니라 인문학자, 사회과학자, 문인,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들과 협업하면서 이 문제를 바라보려 노력해 왔는데요. 과학, 그리고 인문사회 및 문화계와의 협업이 인류세 논의에 어떤 시너지를 가져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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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파울 크뤼천이 이 개념을 제안한 이유는 단순히 인간이 지질학적 행위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너무 심대해져서 이 행성이 더는 안정적인 홀로세의 시대에 있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문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내놓는 의견들은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저명한 환경사학자는 글로벌 차원에서 정말 크고 새로운 변화가 20세기에 일어났음을 연구해 인류세의 경험적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인간과 비인간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역사의 행위자가 된다는 이론을 만든 한 기술철학자는 인간 활동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이 경제활동과 정치논의의 핵심으로 부상한 사실, 그리고 인간 활동과 무관하지 않은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전 세계가 영향을 받은 사실 등을 인류세 개념이 잘 포착해 준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생물종으로 통칭하여 이 문제를 취급하는 것은 오류이며, 현재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결과로 볼 수 있기에 ‘자본세’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죠.
직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데 익숙한 예술가들에게도 인류세는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전국의 주요 미술관의 인류세 관련 전시에 초대받아 강연을 많이 했는데, 반응이 매우 뜨거웠습니다. 예술가들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인류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이것을 일반 대중들에게 전하기 때문에, 그 힘이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류세가 새로운 상상력을 촉발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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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구미술관의 ‘누구의 숲, 누구의 세계’ 전시회에 포함된 장한나 작가의 ‘뉴락: 암석화된 플라스틱’ 작품 (사진: 박범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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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세 논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서도 유네스코가 안팎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이유는, 그것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평화’ 그리고 ‘미래 문제 해결’과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환경 위기를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 인류세 논의의 어떤 측면을 더 주의깊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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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더 이상 안정적인 홀로세의 지구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기후위기가 일상화되고 불안정한 인류세의 지구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자연과 문화를 딱 나누는 이분법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논의를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자연과 문화를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아니라 서로 다층적으로 얽혀있는 존재 자체로 볼 때, 무엇을 어떻게 보존하고 지켜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매우 다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섬나라의 경우, 어떤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겠습니까? 유네스코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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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계시겠지만 2025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입니다. 작년 말 과학잡지 《에피》에 쓰신 글 ‘얽힘에서 이음으로’에서 굳이 ‘얽힘’이라는 단어를 쓰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양자과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핵심 기제가 ‘얽힘’이고, 동시에 인간과 지구 전체 시스템의 ‘얽힘’을 자각하는 것이 인류세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표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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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에 정립된 양자역학은 물리학계에 지진과 같은 커다란 충격을 주었죠. 그때까지 팽배했던 뉴턴식 세계관, 즉 사물의 초기 조건을 알면 운동 궤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원자나 전자나 중성자와 같은 것을 다룰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러한 불확실성의 원리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양자역학에 기반해서 만든 GPS는 우리 일상에 꼭 필요한 기술이 됐죠. 최근에는 선진국들이 양자 컴퓨팅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데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세계에서의 얽힘 현상이 새로운 기술에 적용이 되고, 그 기술이 지구촌이 정치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및 문화 분야와도 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가 않아요. 언제나 양면성이 있습니다. 기술을 개발하고 소유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격차가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은 커다란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얽힘이 하나의 ‘현상’이라면, 이음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이런 갈등을 풀고 바람직한 얽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냉철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에 더해,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인류세연구센터에서는 새로운 연구를 해서 좋은 논문을 쓰는 작업을 하면서, 보다 실천적으로 시민과 연계하여 활동하는 것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음이라는 말은 영어로 ‘engagement’라 부르는 그러한 노력과 다짐을 함축하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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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께서는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도전과제들이 우리가 단순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실존적인 부조리를 자각하고 반항해야 하는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2025년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저희 뉴스레터 독자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긍정적인 ‘반항’을 한 가지 제안해 주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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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부조리라고 하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산꼭대기로 돌을 굴러 올리지만 거기에 다다른 순간 돌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그 돌을 찾아 다시 같은 작업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형벌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 형벌 때문에 시시포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제가 인류세를 부조리라고 말한 이유는 인간이 점점 비슷한 상황에 빠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손상된 지구를 라디오 고치듯이 이전 상태로 쉽게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어디에 희망을 둘 수 있을까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2015년에 체결했던 파리협약은 이제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화석연료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았고, 최근의 국제정세 변화로 인해 오히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환경 변화가 유네스코 활동에도 영향을 줄 텐데, 바로 이때 유네스코의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구조적이고 실존적인 위협을 깨닫는 것이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압박이 거세지더라도 굴복하지 않고 버티어나가는 것도 중요한 ‘반항’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와 연대의 끈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반항’이며, 조금씩 서로 희생하고 손해보면서 돌봄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반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반항의 스토리는 기록되고 전해질 것입니다. 저는 위기라는 말에 항상 기회가 내포되어 있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항은 말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이라는 실체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옳은 일을 찾아 자기 자리에서 꿋꿋하게 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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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유네스코 뉴스레터가 새로워집니다!
작년부터 온라인 뉴스레터 형식으로 바뀌어 더 많은 독자들을 찾아가고 있는 유네스코 뉴스레터가 3월부터 한층 더 가까이, 풍성한 내용을 갖추고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존에 월 둘째 주와 넷째 주 목요일에 발송되던 뉴스레터는 이제 월 4회, 매주 목요일마다 받아보시게 될 거예요. 회차별로 각각 ‘이슈쿠키’, ‘따끈따끈 파리통신’, ‘알쓸U잡’, ‘유네스코 Talks’가 읽기 부담은 덜면서 내용은 더욱 알차게 구성될 예정이며, 그 달의 세계기념일 날짜에 따라 세계기념일 소식도 함께 실릴 거예요. 뿐만 아니라 구독자 참여형 이벤트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앞으로도 뉴스레터 하단의 설문폼을 통해 의견 남겨주시면 적극 반영해 더욱 알찬 뉴스레터로 보답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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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교사대화: 2025 한국교직원 일본초청연수
25년동안 지속되어 온 한일교사대화 프로그램. 지난 1월 말에는 우리나라 교사들이 일본에 방문하는 차례였는데요. 경쟁과 비교가 아니라 이해와 소통을 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단장으로서 방문단을 이끈 김성열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의 후기를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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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네스코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딱 10초만 시간을 내서 피드백과 후기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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