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경제학’의 케이트 레이워스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는 말엔 대체로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단 1%, 아니 0.1%라도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친다면 그날 뉴스는 온통 이 소식으로 뒤덮이고 사람들은 걱정을 하게 될 것도 분명하죠. 성장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제의 모델이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생각에 대해 “정말 그래야만 할까?”라며 진지한 의문을 제기해 온 학자들이 있습니다.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도 그중 한 사람인데요. 마치 우리나라의 줄어드는 인구 추계를 보며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줄어드는 숫자 자체가 정말 문제야?’라고 되묻는 이들처럼, 케이트 레이워스는 ‘인류의 끝없는 탐욕’을 지구가 더는 지탱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명백해지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 아주 흥미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3월에 파리에서 ‘지구대학(University of the Earth)’의 부대 행사로 유네스코 『꾸리에(Courier)』 팀과 이야기를 나눈 케이트 레이워스의 말들을 Q&A로 재구성해 여러분께 들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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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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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지구대학' 행사에서 유네스코 꾸리에 팀과 팟캐스트를 진행한 케이트 레이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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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s 미리보기🔍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학’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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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레이워스의 저서 『도넛 경제학』에서 설명하고 있는 도넛 경제학 모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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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성장을 전제로 한 20세기의 경제 모델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하는 ‘도넛 경제학 (Doughnut Economics)’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 (Kate Raworth)가 2012년 옥스팜 (Oxfam)의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하고, 2017년에 저서 『도넛 경제학』을 펴내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성장이란 ‘무한한 우상향’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지는 않는 영역’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도넛 경제학의 핵심입니다. 이 모델은 원의 둘레를 따라 물과 음식, 교육, 일자리, 집, 성평등, 평화, 참정권 등 인간다운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을 배치하고, 경제가 ‘최소한의 기준선 (안쪽 원)’과 ‘과잉으로 지구에 악영향을 미치는 선 (바깥쪽 원)’ 사이에 위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으며, 그 적절한 영역의 모양이 도넛을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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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넛 경제학이 처음 소개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우상향하는 직선이 아닌, 동그란 도넛 모양의 경제 성장 모델을 고안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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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대학에서 기존 경제학 이론에 염증을 느끼고 한동안 학계를 떠났다가 쌍둥이의 엄마가 되어 돌아왔던 때였어요.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필수 요건들을 담은, ‘행성 경계(planetary boundaries)’라고 불리는 그림을 보게 되었는데요. 이것은 깨끗한 물과 공기, 치명적 자외선을 막아주는 오존층 등 9개 조건들이 안정적이고 균형 있게 유지될 때 이 행성에서 생명도 번성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어요. 그림을 보는 순간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저는 그 그림처럼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바깥쪽에 존재한다면, 안쪽에는 교육, 건강, 집, 경제적 수입과 같이 인간으로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선을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안쪽에 배치할 항목들은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서 가져왔어요. 전 세계가 사람들에게 최소한 이것들만은 보장하도록 노력하기로 이미 약속한 항목들이니까요. 이 안쪽 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인간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고, 반면에 바깥쪽 선을 넘어버린다면 오존층 파괴, 해양 산성화와 같이 행성의 균형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죠. 자연히 목표는 각 항목에서 우리의 위치가 도넛 모양의 몸체, 즉 안쪽 선과 바깥쪽 선 사이에 위치하도록 만드는 게 되어야 해요. 기존 경제학이 제시하던 목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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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부터 현재의 경제학 모델 의문을 가지셨다고요. 어떤 점에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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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세상’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수많은 이론들 중에서 자연, 생명, 그리고 환경을 어떻게 제대로 반영하고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20세기의 경제학은 국가의 부, 혹은 GDP를 성장시키는 것을 곧 성공이라고 정의해요. 여기엔 ‘끝’이 없어요. 계속해서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가려는 움직임만 있죠. 이건 말도 안 되는 것(insanity)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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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도넛 경제학 모델을 들고 모교로 돌아와 환경변화연구소(Environmental Change Institute) 에서 강의를 하고 계십니다. 경제학 교육에서 어떤 부분을 바꾸고자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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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그림은 대개 수요-공급 곡선이에요. 이렇게 우리는 수업 첫 시간부터 ‘시장’을 모든 인식의 중심에 두고, 그 위를 움직이는 ‘가격’을 기준으로 삼죠. 환경오염과 같은 것들은 그저 ‘외부효과(externality)’로 다뤄요. 저는 이 지점에서 이미 지구 생태계의 붕괴가 시작된다고 봐요. 지금까지 우리는 ‘끝없는 성장’이라는 경제학의 전제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논의를 해 보지 않았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이것을 설명하면서 ‘성장이 목표’라는 말은 그저 우리에게 주입된 말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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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조차 ‘성장’은 여전히 경제 운용의 기본 목표입니다. 이런 생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결국 분배의 문제,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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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 세계 1%의 사람들의 손에 막대한 부를 쥐어준 ‘분열의 경제(divisive economies)’를 당연한 듯 여겨 왔어요. 이렇게 기울어진 세상에서 인류는 함께 번영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배의 경제(distributive economies)를 고민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새로 창출되는 부를 거기에 공헌한 모든 사람들과 더 공평하게 나누고,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해요. 아울러 20세기부터 당연하게 여겨왔던 ‘소모적 경제(degenerative economies)’와도 작별하고 ‘재생적 경제(regenerative economies)’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 번 쓰고 소모하는 게 아니라 고쳐 쓰고, 복구해서 쓰고, 계속해서 순환하는 시스템으로의 변화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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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넛 경제학을 추종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성장지상주의’를 외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분배’를 최우선으로 삼는 지도자 역시 많은 편은 아니죠. 대개 ‘성장을 유지하면서 분배도 신경 쓰는’ 정도에서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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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색 성장을 하면서도 지금 누리는 것들을 그대로 누릴 수 있고, GDP 역시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아직 그렇게 믿어야 할 확실한 근거를 찾지 못했어요. 적어도 그 어떤 나라도 아직은 그런 수준을 달성하지 못했죠. 또 한편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GDP 감소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것도 확신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GDP의 미래가 어떠할 것이라고 단정지어 얘기하는 것을 일단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확실히 해야 하는 일은 경제에서 ‘성장’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를 낮춰 나가야 한다는 것이에요. 지금의 경제는 구조적으로 무한한 성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져 있어요. 화석 연료로 만든 값싼 에너지가 뒤를 받친 덕분에 경제가 계속 팽창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왔어요. 하지만 이제 값싼 화석 연료가 뒷받침한 세상의 ‘끝’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는 이번 세기는 우리가 그간 ‘노멀’로 여겼던 것들에 대해 존재론적인 경제 질문(existential economic question)을 던져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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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하신 새로운 질문, 새로운 ‘노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의 전 분야에서 작지 않은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를 한번에 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먼저 개인 차원에서 시도해 볼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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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어떻게 먹는 게 좋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육류 기반 식단에서 채소 기반 식단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만큼 우리 경제가 ‘도넛’ 안에 위치하도록 돕는 게 될 겁니다. 내가 멋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얼마나 먼 곳까지 가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 봐도 좋아요. 우리 집의 적정 냉·난방 온도를 생각해 볼 수도 있죠. 내가 예금을 넣어두는 은행이 그 돈을 어떻게 굴리는지, 어떤 기업에 대출을 해 주는지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처럼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많아요.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그렇다고 해서 내 개인의 실천만으로 만족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나처럼 다양한 삶을 추구하는 유권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정치인들에게 늘 상기시켜 주어야 해요. 그러한 나의 희망이 현실로 만들어지기 위해 이를 뒷받침할 적절한 정책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계속 강조해야 합니다. 예컨대 지금 런던-파리 간 비행기 요금은 기차 요금보다 저렴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지속가능한 선택’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더 깨끗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교통편이 더 저렴해져야만 하겠죠.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지금보다 더 쉽고 더 경제적인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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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배움을 잇는 다리, ‘브릿지’ 워크숍 서울·부산 개최
학교 밖 배움의 길을 여는 한국 교육 ODA '브릿지' 워크숍이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열립니다. 아시아·아프리카 13개국 유네스코 국가위원회 및 협력기관 관계자들이 함께하는 이번 워크숍에서는 비형식교육의 디지털 전환, 학습 인정, 국제 파트너십 등을 중심으로 교육 협력의 성과와 과제를 공유하고, 포용적 교육 실현을 위한 국제협력 방안을 논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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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부터 5일까지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2025 디지털 러닝 위크’는 전 세계 26개국 교육장관과 30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AI와 교육의 접점을 다각도로 논의했습니다. 교육 격차 해소, 학습자 권리 보호, 교사 역할 보장 등 5대 우선과제를 강조하며, 인간 중심의 AI 교육 생태계 구축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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