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genos(민족·집단)’와 라틴어 ‘-cide(살해)’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혼성어로, 폴란드 출신 유대계 법학자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 1944년에 창안한 용어입니다. 이 말은 평화로운 일상을 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직접 와 닿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노사이드는 우리와 똑같이 지극히 평범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겪었던 무섭고도 끔찍한 현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집단학살의 반인륜적 실체와 그러한 일이 발생한 이유를 끊임없이 곱씹고 기억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유엔은 2003년부터 매년 4월 7일을 ‘1994년 르완다 투치에 대한 제노사이드 국제 성찰의 날(International Day of Reflection on the 1994 Genocide against the Tutsi in Rwanda)’로 지정했습니다.
유네스코도 이러한 국제적인 성찰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네스코야말로 르완다 집단학살의 발생 원인을 성찰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데 적합한 기구라는 생각도 듭니다. 유네스코의 전문영역인 교육, 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이라는 분야가 제각각 쓰이기에 따라서 학살을 촉발하는 데 악용될 수도 있고, 반대로 화해와 평화를 쌓아가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교육은 차별과 분열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동시에, 평등과 통합의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객관적인 지식과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과학의 역할 역시 중요한데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른바 ‘하미틱 가설(Hamitic hypothesis)’이 식민지 시기 당시 과학 담론의 이름으로 동원되면서, 식민통치하 르완다에서 투치와 후투 집단을 구분하고 위계화하는 데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집단 정체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문화는 폭력을 조장할 수도, 평화구축의 핵심 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르완다 학살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던 게 라디오를 통해 전파된 혐오발언(hate speech)이었음을 상기할 때, 진실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통로로서 정보커뮤니케이션 부문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네스코는 르완다 집단학살을 성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실시하고 있을까요? 유네스코는 평화교육의 일환으로 ‘제노사이드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하면서, 매년 4월 7일을 기념하여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관련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994년 투치에 대한 제노사이드 기억하기: 교육, 기억 그리고 대화(Remembering the 1994 genocide against the Tutsi: Education, memory and dialogue)’라는 제목으로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습니다. 4월 14일에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되었던 라운드테이블에는 주유네스코르완다대표부 대사, 키갈리 제노사이드 추모관(Kigali Genocide Memorial) 관계자, 르완다의 NGO(Interpeace Rwanda) 관계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직원, 역사학자 및 연구원 등 여러 전문가와 각국 대표부 직원이 참석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집단학살의 기억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지원하며, 미래의 잔혹 행위를 예방하는 데 있어 교육과 세대 간 대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라운드테이블에서 논의되었던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집단학살과 관련된 추모 현장이 역사적 이해를 심화시키고 집단적 성찰을 촉진하는 데 기여한다는 주장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르완다의 집단학살 추모 장소들(Bisesero, Nyamata, Murambi, Gisozi)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관계자는 이들 장소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추모관이 단순히 아프고 어두운 기억을 보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폭력의 재발 방지와 평화구축을 위한 ‘화해’의 메시지가 공간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은 이러한 기억을 전승하는 핵심 수단 중 하나인데요. 여기에 더해 가해자의 증언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예컨대 이웃의 피해자들 가정에서는 대부분 조부모가 돌아가셨는데, 가해자의 가정에서는 조부모가 멀쩡히 살아계시는 이유에 대해 아이들이 궁금해 하기 시작하면서 집단학살에 대한 세대 간 대화가 촉발되기도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사례에서처럼 청년들은 집단학살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후손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당사자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세대 간 제노사이드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26년, 유네스코는 르완다의 ‘4월의 어느 날’을 이렇게 라운드테이블이라는 대화와 성찰의 방식으로 기억해냈습니다. 1994년 르완다에서 발생했던 비극적 사건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지, 우리는 무엇을 참고하고 또 기억해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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