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유산 연구’ 로라제인 스미스 교수 세계유산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웅장한 유적이나 오래된 건축물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유산이 과연 전문가들이 지정하는 문화재에만 머무는 것일까요? 비판적 유산 연구(Critical Heritage Studies)를 대표하는 연구자 중 한 명인 로라제인 스미스(Laurajane Smith) 호주국립대학교 유산·박물관학 교수는 오랫동안 이러한 통념에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대표 저서 『Uses of Heritage(유산의 쓰임새, 2006)』에서는 ‘공인된 유산 담론(Authorised Heritage Discourse, AHD)’이라는 개념을 통해 전문가의 지식과 기념비적 장소, 물질적 가치에 무게를 두어 온 기존의 유산 담론을 비판했습니다. 스미스 교수에게 유산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고정된 물건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삶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사회적·문화적 과정이죠. 기억과 감정, 삶의 경험이 유산의 의미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살피며 시민의 참여와 일상적 경험의 중요성을 탐구하는 것에서 전문가의 역할을 찾기도 했습니다(『Emotional Heritage(감정적 유산)』, 2020). 뉴스레터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스미스 교수를 만났는데요. 이 자리에서 오늘날 우리가 유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공동체의 목소리를 왜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유산이 우리를 연결하는 동시에, 때로는 우리를 갈라놓기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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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의 핵심은 사람들이 그것과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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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다크 헤리티지 중 하나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풍경. 로라제인 스미스 교수는 비판적 유산 연구를 통해 물질적인 유산의 이면, 즉 복잡하고 다양한 역사와 개인적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사진=셔터스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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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은 '세계유산'이라고 하면 전문가가 인정한 웅장한 유적이나 오래된 건축물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비판적 유산 연구(Critical Heritage Studies, CHS)를 통해 이러한 통념에 꾸준히 질문을 던져 오셨는데요. 일반 독자들을 위해 비판적 유산 연구가 무엇인지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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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다크 헤리티지(dark heritage; 전쟁, 학살, 식민 지배, 재난 등 참혹하고 아픈 역사적 사건이 서려 있는, 이른바 ‘불편한 유산’ 혹은 ‘부(負)의 유산’ - 편집자 주)’로 불리는 장소와 같은 예외가 있기도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대체로 위대하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유산을 주로 미적으로 아름다운 기념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제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기념물이)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멋진 유산조차 그 이면에는 어둡고 복잡한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세계유산협약은 전통적으로 건축적·미적·역사적 가치를 강조해왔고, 인류가 끊임없이 진보해왔다는 하나의 큰 역사적 서사 속에서 유산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산은 역사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유산은 여러 다른 층위를 갖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혹은 국제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받는 유산이 있는가 하면, 비록 세계유산목록에 오를 일이 없다고 해도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유산도 있어요. 비판적 유산 연구는 바로 이러한 복잡성에 주목합니다. 유산은 언제나 아름답거나 편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우리 생각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아주 일상적일 수도 있고, 위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유산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이해하는 일은 국가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지역과 공동체, 가족, 개인의 차원에서도 일어납니다. 비판적 유산 연구는 그 모든 ‘과정’을 유산으로 여겨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물건이나 장소, 건축물이 아닌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문화적 현상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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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의 ‘공인된 유산 담론’은 유산의 가치가 일부 전문가의 판단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유산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실천 속에서 형성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그렇다면 이러한 목소리가 유산의 해석과 관리에 실질적으로 반영되기 위해 어떤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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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된 유산 담론’은 유럽적 맥락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일련의 관행과 인식을 뜻하는데요. 이러한 사고방식은 별다른 비판 없이 유네스코와 세계유산협약, 그리고 어느 정도는 다른 유산 관련 협약과 규정, 지침 속에도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인식 속에서는 유산을 찾아내고 돌보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은 전문가라는 생각을 계속 재생산하게 됩니다. 반면에 공동체, 즉 이른바 ‘비전문가’들은 의도치 않게 배제될 수 있어요. 하지만 공동체 역시 그들만의 깊이 있는 전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중요한 유산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나 건축가, 다른 전문직 종사자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방식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공동체를 유산 담론에 의미 있게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유산과 관련한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우리가 어떤 권력과 위치를 갖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의 결정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신중하게 살펴보고, 무엇보다 솔직해야 합니다. 유산 전문가들은 관리 과정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공동체에 분명히 설명해야 하며, 서로 개방적이며 존중하는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문성을 포기하자는 뜻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그 전문성이 어떤 방식으로 행사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대신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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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공동체가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상적인 사례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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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이런 공동 창조(co-creation)의 좋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20여 년 전 이 논의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호주의 경우, 일부 상황에서는 원주민 공동체가 전문가나 정부의 유산 관리 결정 과정에 직접 개입하거나 심지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칠레의 한 옛 광산 마을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광산은 이미 문을 닫았지만, 지역공동체가 스스로 자신들의 광산 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지역과 정부 차원의 전문가들과 협력하면서 장기적으로 세계유산 등재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해당 유산이 거대한 저택이나 성당, 식민지 시대의 궁전이 아니라 지역공동체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장소였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전문가가 공동체에게 무엇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공동체가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와 전문가의 관계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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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유산 프로그램은 장소와 물적 유산을 중점적으로 보호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유산은 그곳에 얽힌 기억과 감정, 이야기와 같은 무형적 가치와 분리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을 구분해 운영해 온 유네스코의 제도는 어떤 의의와 한계를 지니며, 두 영역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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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을 나누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인위적인 구분입니다. 이는 건축이나 돌, 물질적 대상과 같은 물리적 실체에 강한 가치를 두어 온 서유럽의 특정한 지적·문화적 전통에서 비롯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유산을 경험하는 방식은 그렇게 나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역사적인 장소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그 장소의 물리적 구조에 대해서만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가족의 이야기와 기억, 감정적 애착, 소속감, 그리고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무형문화유산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톤헨지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생각해보세요. 물론 물리적인 구조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거기에 부여한 의미와 기억, 활동과 감정이 없다면 결국 그것은 물질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유산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그것과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저는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을 그렇게 엄격하게 구분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의미에서 보면 모든 유산은 무형적입니다. 물리적인 장소 역시 결국 우리가 그곳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 감정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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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세계 곳곳에서는 유산이 특정한 정치적 서사를 뒷받침하거나 사람들을 갈라놓는 데 이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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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는 유산이 본질적으로 언제나 정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이것은 나의 유산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하나의 경계가 생깁니다. ‘나’ 또는 ‘우리’와 ‘너’ 또는 ‘그들’ 사이의 구분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필연적으로 소유와 소속, 정체성의 문제도 따라옵니다. 오늘날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런 감정이 배타적인 정치에 동원되는 방식입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일부 정치인들이 사회의 다양성 확대와 외부인 유입 증가세를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유산이나 문화가 위협받고 있다고 절박하게 주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실존적 위협의 감정이 매우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두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유산 연구자와 실천가들은 유산이 언제나 긍정적이거나, 언제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유산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혹은 유산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도움으로써 대화와 포용,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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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께서는 2024년 출범한 '트랜스내셔널 헤리티지 국제 공동연구' 사업에도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 국제적인 연구 협력이 앞으로 어떤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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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내셔널 헤리티지 국제 공동연구' 사업의 시작부터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국제적이고 초국경적인 연구를 지원한다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어요. 국경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협력하며, 글로벌 연구 공동체를 만들어갈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연결이 더욱 확대되어, 더 많은 연구진이 유산이 지닌 다층적인 가치를 깊이 있게 탐구해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장기적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유산을 국제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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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유산의 가치에 관심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계유산을 관리하는 전문가부터 박물관을 찾는 평범한 관람객까지, 유산을 마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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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유산은 오래된 건물이나 기념물, 물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유산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어떤 부분을 현재로 가져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일상적인 문화적 과정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은지도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유산은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합니다. 유산과 관계를 맺기 위해 전문가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가고, 가족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하나의 전통을 이어가거나, 어떤 장소가 나에게 왜 중요한지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이미 유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유산은 그저 과거로부터 건네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현재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바로 그 과정을 통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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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국가유산청과 함께 ‘가나의 성채와 요새’를 대상으로 기후변화 대응 문화유산 ODA 사업의 현지 활동을 본격화합니다. 현장조사와 지역주민 면담, 8월 26일 공식 착수식을 시작으로 기후위험 모니터링과 현지 전문가 역량강화 등 지속가능한 유산 보존 기반을 마련해 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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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세바시가 9월 4일 ‘신뢰가 만드는 교실–교육 공동체 회복의 출발’을 주제로 2026 유네스코 토크를 개최합니다. 교사·학부모·교육 전문가와 함께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 교육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토크 신청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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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유산 보호와 평화의 문화 확산을 위한 ‘2026 투게더 걷기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8월 28일까지 사전신청을 완료한 참가자 중 30명을 추첨해 커피 쿠폰을 증정하니, 올가을 의미 있는 걷기에 함께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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