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국, 청년, 현장 관리자들의 선언문 살펴보기 드디어, 무사히, 모든 게 끝났다는 느낌으로 내뱉는 안도의 한숨. 지난 7월 29일에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가 막을 내린 뒤, 짧게는 몇 주에서부터 길게는 몇 달에 이르기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구성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8월의 막바지 여름을 견디고 있습니다. 물론 행사 폐막과 함께 모든 업무가 땡 하고 사라진 것은 아니죠. 보도자료와 문서 정리, 그리고 결과의 해석과 향후 방향 설정까지, 이번 회의에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중요한 일들이 앞으로 하나씩 가지를 뻗어 나갈 텐데요. 세계유산위원회를 전후해 나온 세 가지 선언의 의미를 잘 살펴보는 일도 그중 하나입니다. 21개 위원국이 합의로 채택한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 선언」, 29개국에서 모인 청년 전문가들이 쓴 「2026 세계유산 영프로페셔널 포럼 선언」, 그리고 45개국의 현장 실무자들이 내놓은 「제8차 세계유산 현장 관리자 포럼 선언」. 같은 행사에서 똑같이 세계유산을 바라보며 내놓은 선언이니 그 내용도 그게 그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예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각자의 입장에 따라, 역할과 책임에 따라 내놓은 의견들이 어떻게 다르고, 또 하나로 모이는지 살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롭거든요. 오늘은 그 내용을 주제별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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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의 미래를 향한 시선, 입장은 달라도 방향은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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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현장 (©UNESCO/KH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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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 선언 (이하 부산 선언) 7월 20일, 세계유산위원회 본회의 첫날 채택된 부산 선언은 정부 간 공식 문서라는 점에서 이번 세계유산위원회를 계기로 나온 선언들 중 가장 무게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세계유산위원회 개최와 함께 세계유산 협약 이행을 위한 전략 목표를 제시하는 선언들이 몇 차례 나온 바 있는데요. 이번 부산 선언은 부다페스트 선언(2002), 본 선언(2015), 이스탄불 선언(2016), 바쿠 선언(2019), 푸저우 선언(2021)의 내용을 이어가면서도 무력분쟁과 기후변화, 개발 압력 등 세계유산이 직면한 복합적 위기에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방향을 추가로 제시했습니다. 국제사회가 개별 국가의 경계를 넘어 ‘협력’을 통해 유산 보호의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 2026 세계유산 영프로페셔널 포럼 선언 (이하 청년 선언) 뉴스레터와 SNS, 홈페이지를 통해 몇 차례 소개해 드린 바와 같이, 청년 선언은 세계유산위원회 개막에 앞서 7월 13일부터 한국에 모인 전 세계 29개국 청년 전문가 31명이 한국의 세계유산 현장을 둘러보며 치열하게 토론한 끝에 내놓은 결과물입니다. 세계유산위원회 개막일에는 청년 대표가 그 내용을 공개하면서 행사의 분위기를 한층 뜨겁게 달구었는데요. ‘세계유산, 공동체, 그리고 교육: 변화의 주체로서 청년 역량 강화’라는 주제를 담은 청년들의 목소리는 열정적이고 구체적이었습니다. 청년이라는 이름이 그럴듯한 구색맞추기로 쓰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그들은 청년이 맡을 역할과 이를 뒷받침할 자원의 규모를 명확히 규정하고 그 이행을 보장할 장치도 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 제8차 세계유산 현장 관리자 포럼 선언 (이하 현장 관리자 선언) 제41차 세계유산위원회(2017년 폴란드 크라쿠프) 때부터 전 세계 현장 관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유산 관리의 미래를 논의하는 현장 관리자 포럼이 매번 열렸는데요. 이번에도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를 맞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ICCROM(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은 ‘세계유산 리더십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과 공동으로 포럼을 조직했습니다. 45개국에서 66개 세계유산 관리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 74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연결과 소통: 세계유산 관리를 위한 참여적 접근’이라는 부제를 단 선언이 나왔습니다. 유산 현장의 실무를 담당하는 관리자들이 주체인 만큼, 선언에는 현장 관리자들이 공동체에 더 나은 서비스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더 효과적인 거버넌스 방안,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한 지식·연구·데이터 체계에 대한 고민들이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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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의 시대, 유산의 미래를 꿰뚫는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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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선언, ‘5C’에 여섯 번째 ‘C’를 더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 체계의 틀을 설명하는 전략목표로 ‘5C’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보존 (Conservation) ▲신뢰성 (Credibility) ▲역량강화 (Capacity-building) ▲소통 (Communication) ▲공동체 (Communities)의 첫 글자로 구성된 키워드인데요. 이번에 부산 선언은 “복합적이고 갈수록 심화되는 상호 연결된 지구적 도전이라는 오늘의 상황이 기존의 5개 전략목표를 개별적으로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대응할 수 없는 복잡하고 범분야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또 하나의 ‘C’, 즉 ‘협력(Collaboration)’을 더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여섯 번째 C가 “기존의 5C를 대체하거나 약화하려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는데요. 이 말은 곧 협력이라는 목표가 기존의 5C와 구분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목표들을 서로 연결하고 강화하는 원칙으로 기능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협력이라는 ‘실’로 다섯 개의 ‘구슬’을 연결해 더 아름다운 결과물을 내놓자는 거예요.
- 청년들, ‘협력’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고 화답하다 국가유산청과 함께 부산 선언에 담긴 ‘협력의 C’를 다듬어 내느라 애쓴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청년 전문가들 역시 이와 연결되는 내용을 선언문 속에 포함시킬 것인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웠어요. 물론 청년 선언은 오로지 청년들의 논의를 통해 도출되는 것이기에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었답니다. 하지만 선언문을 읽어보면 청년들 역시 이러한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지식을 행동으로, 구상을 사업으로, 동반 관계를 오래 지속되는 변화로 바꾸어 내면서 우리는 진실하게 이끌고, 공동체 안에서 일하며, 세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협력을 북돋우고, 교육을 통해 사람과 그들의 유산을 이어 나갈 것이다”라는 마지막 단락의 다짐에서, ‘함께’의 가치에 공감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 현장 관리자들에게 협력은 효과적 현장 관리 체계의 전제 조건 사실 유산 현장 관리자들에게 있어 협력이란 단어는 선언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효과적인 현장 관리를 위한 기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그런 만큼 현장 관리자 선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협력’, 그리고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요. 관계자 및 기관들에 대한 감사 인사가 끝나자마자 선언문은 “이전의 세계유산 현장 관리자 포럼 선언문들을 상기하며, 현장 관리자들은 효과적인 관리가 견고한 협업 관계에 달려 있음을 재확인한다”는 문구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결을 강화하고 소통과 의사결정 과정을 개선하며, 세계유산과 그 연관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서비스와 혜택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는 말로 끝나죠. 그 사이에는 “책임을 맡은 주체들은 계획과 이행, 정보 공유, 모니터링, 보고를 위한 정기적이고 공식적인 기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지원 요청이 들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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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 놓여 있는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 선언」 책자 (©UNESCO/KH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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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의 미래에 드리운 디지털·AI 도구의 역할과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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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 있는 기술 활용 강조한 부산 선언 부산 선언은 ‘디지털 책임과 미래 세대로의 전승’이라는 항목에서 디지털 기술의 역할도 다루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세계유산을 확인하고 기록하며 해석·접근·보존·전승하는 방식을 점차 크게 좌우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활용이 “투명하고 책임 있으며 책무성을 갖춘 관행”으로 자리잡기 위한 요건도 언급했죠. 정확성과 맥락, 포용성, 공평한 접근, 국제인권법을 포함한 국제법의 존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내용을 덧붙이면서요. 아울러 이러한 기술이 전통 지식과 원주민 지식에 관한 공동체의 권리와 이익을 존중해야 하며, “디지털 접근과 연결성, 기술적 역량의 격차는 물론 유산 관련 데이터의 완전성과 보안, 장기 보존에 대한 위험에도 대응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어요.
- 충분한 투자와 윤리적 활용 강조한 청년들 청년 선언에도 디지털 기술, 특히 AI의 활용에 대한 다짐과 요구가 담겨 있었어요. 기술 활용에 상대적으로 더 친숙하고 유연한 세대 답게 청년 전문가들은 “참여의 장벽을 없애고 평생에 걸친 포용적 학습을 촉진하기 위해 역량강화와 디지털 기술, 맥락에 맞는 자료에 투자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하는데요. 그러면서도 선언에 담은 청년 세대로서의 다섯 가지 다짐 중 하나로 “인공지능 등 첨단 디지털 도구의 윤리적 활용”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어요. 청년들 역시 신기술의 가능성만큼이나 윤리적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유네스코의 시선을 분명히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신기술의 효용과 위험성을 동시에 느끼는 현장 관리자들 현장 관리자들의 구체적 요청 역시 신기술의 엄청난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습니다. 관리자들은 이미 디지털 도구와 AI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정리·분석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위험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어요. “기관과 부문을 넘나드는 조율을 간소화하고, 관련된 모든 이들이 정보에 더 쉽게 접근하도록 하며, 동료 간 교류를 넓힐 수 있다”는 문구에서도 업무 현장에서의 폭넓은 활용도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 선언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의 「인공지능 윤리 권고」를 직접 언급한 부분이 눈에 띄는데요. 신기술의 활용이 “언제나 투명하고 포용적이며 책무성을 갖추어야 하며 (중략) 프라이버시를 엄격히 존중하고 지역의 지식 체계를 보호해야 한다”라면서, 그 달성 기준으로서 인공지능 윤리 권고를 준수할 것을 특별히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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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하고 장려한다’는 부산 선언 유산 보호와 전승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관계기관만의 참여로는 충분치가 않습니다. 부산 선언이 지역공동체와 청년, 원주민, 문화 전승자와 지식 보유자들을 “세계유산의 의미와 살아 있는 현재적 의의, 그리고 가치를 지속시키고 전승하는 능동적 동반자”로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하지만 회원국들이 협의로 채택한 공식 문서인 만큼 부산 선언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요구들을 담은 청년 선언이나 현장 관리자 선언에 비해 신중한 문구를 사용했습니다. “협약에 따른 당사국의 책임을 존중한다”는 언급을 하고, “적절하고 해당되는 경우”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동반자로) 인정할 것을 장려한다”고 했어요. 선언의 무게만큼 그 어법의 완곡함, 혹은 진중함이 드러나는 대목이에요.
- ‘구체적 예산과 자리’를 요청하는 청년들 여타 기후위기나 미래 관련 국제회의 자리에서 나온 목소리들과 마찬가지로, 청년들은 이제 약속은 할 만큼 했으니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청년 선언에도 “세계유산 관리는 상징적 참여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유산 거버넌스 안에서 청년이 맡을 구체적인 역할과 이를 뒷받침할 자원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이를 실제로 이행할 “책무성 장치”의 마련도 강조해요. 아울러 당사국과 위원회를 향해 ▲지역·국가·국제 차원의 유산 거버넌스에 청년을 위한 고정 대표직을 보장하고 ▲청년 참여와 역량강화에 책무성과 공정성을 기할 측정 기제를 마련하고 ▲유산 분야 청년 사업에 대한 지속가능한 재원을 배정할 것을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 ‘진정성의 조건’을 짚은 현장 관리자들 현장 관리자들이 참여와 소통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조건으로 ‘시점’의 문제를 제기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청년을 포함한 지역 공동체의 유산 관리에 대한 참여는 이전부터 강조되어 왔지만, 지금까지는 그것이 이미 결정된 안을 놓고 의견을 묻는 정도에 머물렀다는 문제의식을 관리자들이 공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선언에는 “진정한 참여는 우선순위와 선택지를 결정하는 계획 초기 단계에서 시작되어 이행과 모니터링의 전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문구가 들어갔어요. “다른 주체들의 기여가 어떻게 결정에 반영되었는지를 투명하게 알려 줄 때, 참여가 일회성이 아닌 지속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계획과 의사 결정 과정에 지역 공동체를 비롯한 다양한 관계자들을 처음부터 참여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수렴한 의견에 대한 피드백 역시 확실하게 제공하는 것까지가 진정성 있는 참여와 소통의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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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영 프로페셔널 포럼에 참가한 청년 전문가들의 우리나라 유산 답사 현장 (©UNE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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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탄불 세계유산위원회까지, 이젠 약속 이행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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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위원회는 새로운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하고 결정하는 엄숙한 자리이지만, 동시에 세계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의 흥겨운 축제이기도 합니다. 부산에서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청년들은 개최국 한국의 유산들을 둘러보며 그 속에서 자신들의 다짐과 요구사항들을 찾아 보았고, 관리자와 실무자들은 각자의 노하우와 새로 얻은 정보들을 나누며 유산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온 세 개의 선언들은 각기 다른 지적과 다짐, 요구사항을 담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하나씩 비교하며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저마다 각자의 시각에서 무언가를 요구하고, 촉구하고, 장려하는 문구가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각각의 선언은 ‘모두가 함께 누리고 전하는 지속가능한 유산’의 미래를 가꾸어 나가고자 하는 관심과 열정을 담고 있었어요. 물론 이번에 나온 선언들이 문서로만, 말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또 다른 치열하고도 실무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할 텐데요. 세계유산을 사랑하는 여러분의 지지, 혹은 날카로운 지적과 관심이 함께한다면 유네스코는 그 과정을 차근차근 흔들림 없이 밟아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다음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또 다른 생각과 의견들이 꽃을 피울 때, 그 소식 역시 빠짐 없이 뉴스레터가 전해드릴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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