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논의로 살펴본,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이슈쿠키 🍪 |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유네스코와 한국의 관점에서 큐레이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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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살입니다. 과학자들이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출현한 때로 추정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35만 년 전입니다. 1mm 단위로 표시가 된 4.5미터짜리 줄자에 지구의 역사를 대입하면, 공룡이 번성하던 중생대(中生代)는 그중 약 18.7cm를 차지하고, 공룡이 멸종한 뒤부터 현재까지의 신생대(新生代)는 줄자의 맨 끝 6.6cm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인류가 지금껏 살아온 세월은요? 줄자 한 칸이 약 백만 년에 해당하는 셈이니, 한 칸은커녕 눈금 두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길이가 될 겁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21세기 들어 과학자들은 바로 이만큼, 인류가 지구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이후만큼을 새로운 지질시대로 지정하자는 논의를 매우 진지하게 해 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질시대인 홀로세(Holocene Epoch, 약 1만 1700년 전-현재)를 끝내고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류세(Anthropocene Epoch)’를 지정하자는 이야기지요.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혹은 이기적인 구분으로 보이는데요. 과학자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논의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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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지질시대와 생물종들의 타임라인 (출처: Jarred C. Lloyd 호주 애들레이드대 연구원(지질학 박사)의 위키피디아 자료 번역) ※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하여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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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전체 역사는 지층에 남아있는 지질학 및 생물학적 증거에 따라 그 시기를 구분하는데요. 누대(累代, Eon), 대(代, Era), 기(紀, Period), 세(世, Epoch)의 계층으로 각각의 시기를 결정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은 전 세계 지질학자들의 모임인 국제지질과학연맹(IUGS)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구분에 따르면 지금 우리는 ‘현생누대 신생대 제4기 홀로세’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IUGS는 2009년부터 인류세실무그룹(Anthropocene Working Group , AWG)을 통해 홀로세 이후의 새로운 시기로 인류세를 지정하는 일이 타당한지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룹 소속 연구자들은 지구 곳곳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필요한 연구를 수행했고, 결과를 보고받은 IUGS의 ‘제4기 층서 소위원회’는 지난 2월에 인류세 지정 여부를 투표에 부쳤습니다. 투표 결과는 ‘부결’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IUGS는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5년간 이어온 이 논의 과정은 지질학자들뿐만 아니라 타 학계 및 대중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봤는데요. 유네스코 및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역시 2018년 『 꾸리에』와 『 유네스코뉴스』에서 이 흥미로운 논의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이자 1995년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파울 크뤼천 (Paul Crutzen) 교수가 본격적으로 논의에 불을 지핀 이래로 인류세 지정을 찬성하는 측이 내세운 논리는 명확합니다.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고 이를 발전시켜 온 과정에서 지구 전체 시스템에 남긴 변화의 흔적이 너무나 뚜렷하다는 것이지요. 인류는 지구 전체를 덮고도 남는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만들어 지표면의 모습을 바꾸고 있고, 거대한 댐과 방조제를 지어 강과 해안선의 모습을 바꾸고 있으며, 매 순간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면서 지구온난화와 해양산성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난 100여 년간 일어난 생물종 멸종 추세 역시 자연적인 추세에 비할 바 없이 가팔랐습니다. 결정적으로 이전 45억년 간의 지층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플라스틱 인공 화합물, 그리고 수 차례의 핵무기 실험 및 사용을 통해 방출된 방사능 물질의 흔적은 히말라야 꼭대기부터 태평양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고루 남아 있습니다. 인류세실무그룹은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이 있었던 1952년을 기점으로 전 지구에 퍼진 방사능 물질의 흔적을 확인했고, 인류세를 지정하게 된다면 1952년을 그 기점으로 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류세 찬성론자로서 IUGS 내 논의를 이끌어 왔던 얀 잘라시에비츠 (Jan Zalasievicz) 레스터대 교수는 이러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해당 안건이 부결된 데 대해 깊은 아쉬움을 표하면서, “이로써 20세기 중반 이후 지구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 상태로부터 동떨어졌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할 기회를 놓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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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아르헨티나 리오 핀투라스 선사시대 동굴 벽화의 모습. 인류가 지구에 남긴 모든 형태의 '흔적'은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되게 될까? (위키피디아/Public Dom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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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잘라시에비츠 교수의 해당 발언에 담긴 속뜻은 역설적으로 다수(66%)의 지질학자들이 IUGS의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배경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인류가 지구 전역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켜 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연구와 엄밀한 층서학(層序學, 지층을 연구하는 학문)적 증거가 아니라, 단지 인류의 과오를 경고하기 위한 ‘이벤트’로서 지질시대 지정을 활용하는 일에는 과학자로서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최종 결정 사항을 발표한 IUGS 역시 인류세 지정의 근거로 제시된 증거들이 현재 확립된 지질시대 구분의 기준을 충족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강조했는데요. IUGS는 우선 인류세의 기점으로 제시된 1952년이 너무 임의적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보다 훨씬 전에 산업혁명이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 농경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들 모두 인류가 지구에 ‘인위적인 변형’을 가한 역사의 기점이 되기에 충분한데요. 단지 현 시점에서 방사능 흔적에 비해 지구 전역에서 찾을 수 있는 증거가 제한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시기를 배제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더 큰 문제는 지질학적 관점에서 볼 때 새로 지정하려는 인류세의 기간이 턱없이 짧다는 데 있습니다. 1952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 사람의 수명보다도 짧은 기간을 지질시대로 설정하는 것인데, 이는 앞서 ‘줄자’의 비유로 살펴보았듯 최소 수만 년에서 백만 년 이상에 달하는 기존 지질시대에 비해 짧아도 너무나 짧은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현 지질시대에 해당하는 홀로세 시작 시점의 추정 오차범위만도 11,650년 전을 중심으로 앞뒤로 699년에 달하는데요. 이를 감안한다면 1952년부터의 70여 년이라는 기간이 지질학적 관점에서 얼마나 짧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줄자 눈금’만도 못한 기간을 새로운 단위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더 결정적이며 더 광범위하게 합의된 근거, 무엇보다 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다수 지질학자들의 입장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질학자들이 인간이 지구에 끼치고 있는 (나쁜) 영향력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시기상조라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IUGS 역시 인류세가 이미 “지구학이나 환경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나아가 일반대중들까지 광범위하게 쓰고 있는 용어”임을 인정하면서, 그것이 “인간과 지구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더없이 중요한 용어로 남을 것”이라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더불어 “이번 논의 과정에서 수집된, 인간이 전 지구적 단위에서 가한 충격을 보여주는 다양한 데이터는 향후 논의에서 중요한 근거자료가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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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IUGS의 결정을 통해 지질학계 차원에서의 인류세 논의는 일단락됐습니다. 하지만 인류세라는 주제는 지질학 분야를 넘어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널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 분명합니다. 유네스코 또한 인류세를 둘러싼 논의를 흥미롭게 지켜보면서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될 텐데요. 이는 단지 유네스코가 세계지질공원 (UNESCO Global Geopark)을 통해 지질학적 가치가 있는 명소와 경관을 보호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애초에 인류세라는 용어가 과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것이 단순한 지질학적 의미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환경 등 인류의 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인문사회학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인류세라는 단어의 배경에는 지속가능한 미래, 그리고 생태계와 지구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직시해야만 할 문제가 이미 들어 있습니다. 그 문제의 해결책은 결코 단순하지 않고 쉽게 찾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인류세라는 주제가 호명하는 다양한 학문들, 즉 지질학뿐만 아니라 환경학, 인문학 등에 대한 학제적 접근 (서로 다른 학문 영역을 넘나들며 포괄하는 접근)은 지금 인류가 지구 시스템에 주고 있는 충격을 인지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인류세 논의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적극적인 변화를 위한 뜻을 모을 수만 있다면, 유네스코로서는 필요한 화두를 던지고 이를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유네스코가 가장 잘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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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인 제주도의 수월봉 지질트레일에서 본 풍경 (출처: Wikipedia/Sohyeon Ba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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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2010년)된 제주도. 이 아름다운 섬의 서쪽 해안에 수월봉이 있습니다. 수월봉은 동쪽의 성산일출봉과 함께 제주도의 대표적인 수성화산체(땅에서 뿜어져나온 마그마가 물을 만나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분화구) 중 하나입니다. 성산일출봉과는 달리 수월봉은 화산체 대부분이 바다에 잠긴 상태이고, 덕분에 우리는 수월봉을 중심으로 차귀도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지질트레일을 걸어가면서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선명하게 드러난 화산재 지층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해안선을 감싸면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무늬 옆에 서면 인류의 역사를 가볍게 뛰어넘는 장구한 시간의 흔적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요. 켜켜이 쌓인 지층 옆에 서있는 나,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역사의 맨 끄트머리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따로 이름을 붙이든 붙이지 않든 그 흔적도 차곡차곡 쌓여갈 테죠. 그렇게 언젠가, 어쩌면 아주아주 오랜 세월 뒤 언젠가, 쌓이고 쌓인 그 흔적은 지구의 역사 위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또렷한 인류의 시대를 증언하게 될 겁니다. 그것이 지구에 남은 상처가 아니라 또 다른 경이로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 해야할 일을 분명하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인류세를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도 모두에게 흥미롭고 또 중요한 이야기로 남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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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파리통신🇫🇷 | 한국과 유네스코. 가장 빠르고 유익한 근황 업데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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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저희 통역사들은 오늘 근무하기로 예정된 시간이 15분 초과되어 이만 떠납니다.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통역기를 통해 전해오는 안내가 한동안 믿기지 않았습니다.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 저녁 6시 45분, 6개 언어 통역사들은 이처럼 짧은 인사말과 함께 제34차 IPDC(국제커뮤니케이션개발사업 정부간위원회) 집행이사회 참가자들을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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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회의장에 놓인 동시통역 수신기, 그리고 작별 인사로 종종 쓰이는 인터넷 '짤(특정한 뜻을 담은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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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중단으로 회의가 멈추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주로 소규모 작업단 회의나 전문가 회의 등에서나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이번처럼 정부간 회의는 보통 기한 내에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정부 대표들이 모인 만큼, 회의가 길어질 경우에는 사전에 통역사들과 협의하고 때로는 자정까지도 회의를 지속하곤 합니다. 그동안 밤늦게까지 연장된 여러 회의에 참가했지만 통역 문제로 회의가 중단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심지어 회의가 중단된 시점은 안건 결정문의 4분의 3정도를 논의한 상태에서 참가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던 와중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이미 오전에 회의가 밤까지 연장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고(슬픈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걸까요), 당연히 유네스코 사무국이 통역사들과 협의를 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부 사정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문득 회의 중에 한 참가자가 ‘통역사가 내 말을 잘못 통역해서 내 의견을 오해했는지 모르겠다’는 발언을 농담조로 했던 게 떠올랐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통역사는 국제회의를 원만하게 진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회의 내내 고도의 언어능력과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참가자들도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게 국제회의의 기본 에티켓이기도 합니다. 국제회의 참가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회의가 끝날 무렵에 참가자가 동시통역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거나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심지어 며칠간 이어지는 국제회의에서 통역사 한두 명의 목소리를 매일 듣다 보면 특별한 친밀감을 갖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저만의 내적친밀감을 갖고 있는, 그렇지만 이름도 알지 못하는 유네스코 동시통역사들이 있습니다.
통역사에게 자잘한 불만을 품게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비록 그런 일은 매우 드물지만 통역사도 인간인 만큼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특히 국제회의에서 중요한 내용이 잘못 통역되는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위급 정부 대표의 실무자들이 자신들의 대표가 발언할 때 통역기를 끼고 동시통역을 확인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통역 실수만큼 큰 문제는 아니지만, 통역사의 목소리 톤이나 크기가 좀 아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목소리가 매우 멋지다고 생각하는 유네스코 통역사 한 분이 계신데요. 그분의 ‘꿀보이스’는 너무나 부드러운 나머지 (특히 오후시간대에는) 저도 모르게 졸음이 올 정도라 썩 반갑지는 않습니다. 동시통역은 보통 2인 1조로 진행되는데, 두 통역사의 목소리 크기 차이가 너무 커서 계속해서 통역기의 볼륨을 조절해야 할 때도 난감합니다.
물론 통역사들 역시 이런저런 불만이 없진 않을 겁니다. 유네스코의 통역사들은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그런 내용을 솔직하게 알려주십니다. 대부분 발표자가 말을 너무 빨리하거나 목소리가 작을 때 나오는 지적인데요. 한번은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너무 빨리 얘기하셔서 통역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차갑게 얘기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정부간 회의에서도 통역사들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 회의 참가자들이 못마땅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통역사들의 갑작스런 ‘퇴근’ 뒤 회의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 자리에 있던 36개 이사국 및 옵서버 회원국 대표들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는데요. 스웨덴 대표가 나서 동시통역서비스가 제공되는 6개 유엔 공식언어(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 러시아어) 대신 유네스코의 상용언어인 영어와 프랑스어로 회의를 진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사실 유네스코대표부에 근무하는 외교관들 중에는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 유창하거나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스웨덴 대표의 제안에 바로 몇몇 회원국들이 찬성했고, 2년 만에 개최된 정부간회의를 제때 마치고 싶은 참가자들에게 희망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일부 국가들의 반대의견이 나왔습니다. 어떤 대표는 영어로만, 다른 대표는 프랑스어로만 회의에 참가할 수 있다고 밝혔고, 이대로 회의를 지속할 수가 없다는 게 점점 확실해졌습니다.
회의 중단을 바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규정에 따라 정회(suspension)는 투표를 거쳐 참가 회원국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가능합니다. 다행히(?)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지만, 이번에는 추가 회의 일정을 잡는 문제가 또 만만치 않았습니다. 추가 회의를 개최할 예산을 확인해야 하고(회의 예산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통역비입니다), 회의장 예약도 필수입니다(주말의 맛집만큼은 아니라도, 늘 국제회의가 열리는 유네스코 본부의 회의장 예약도 정말 치열합니다). 결국 다음 회의 일정은 바로 잡지 못한 채 사무국이 추후 결정하고 안내를 하기로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 7시. 예상보다 일찍 퇴근하는 길이었음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하늘은 어두웠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하는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게 돼서 회의를 마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통역 관련 AI기술이 이미 곳곳에서 활용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국제회의 동시통역을 AI가 맡게 될 날도 언젠가 올지도 모릅니다. 통역사 퇴근 시간을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 물론 편리한 점도 있겠죠. 하지만 정말 좋은 점만 있을까요? 정말 실제로 그런 날이 온다면, 저는 이번 회의를 떠올리며 한편으론 개성 넘치는 유네스코 동시통역사들을 그리워할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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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발효해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먹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지난 12월 3일 오후(현지 시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어요. 이번 등재로 우리나라는 총 23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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