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상·네뷸러상 수상 SF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 올해도 어김없이 매우 뜨거운 여름이 우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럽은 이미 초여름부터 찾아온 폭염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요. 기후 재난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는 ‘좀 획기적인 대책이 없을까’하고 고민하지만, 당장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죠. 그런 측면에서 미국의 SF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우리의 상상력을 한층 넓혀주는 작가입니다. 그는 《미래부(The Ministry for the Future)》나 《New York 2140》 등의 작품에서 기후 문제를 다루면서 독자들에게 현실적 제약을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미래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을 요청해 왔는데요. 지난 6월 3일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도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야말로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행동”이라면서 청중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뉴스레터는 작가의 ‘Thought Leaders’* 강연과 청중과의 질의응답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간추려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Thought Leaders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지성들이 사회적 문제를 성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보고자 유네스코 사회변동관리프로그램(MOST, Management of Social Transformation)과 ‘la Caixa’ 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강연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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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레터 아이템
💌 잠깐, 안내! 이번 호는 원래 4주차에 예정되어 있던 유네스코 Talks 코너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파리통신은 2주 뒤, 보다 따끈따끈한 본부 소식을 안고 돌아올 예정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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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문학적 상상에서 찾아보는 현실적 해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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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스탠리 로빈슨 작가의 Thought Leaders 강연 영상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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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 반갑습니다. 강연 초반 “이 세계는 우리 모두가 함께 써 내려가는 한 편의 SF 소설”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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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고, 세상의 변화와 발전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그곳에서 ‘미래가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자랐습니다. 우리 현실 자체가 거대한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한편 19세기 초 영국의 시인 셸리(Percy Bysshe Shelley)는 “시(詩)란 미래가 현재에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의 반영”이라 썼는데요. 지금 기후변화의 시대야말로 미래가 드리우는 그림자가 그 어느 때보다 짙고 무거운 상황입니다. 올해의 엘니뇨로 인해 내년은 또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해요. 이런 흐름이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그건 아무도 모르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대기에 쏟아부은 화석연료로 인해 온실효과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땐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기후변화에 맞서 이를 되돌리기로 합의한다 해도 우리는 해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지구 시스템에 대한 통제력 상실에 우린 얼마나 가까이 와 있을까요? 그것 역시 아무도 몰라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죠. 그러니 80억 인류가 모두 함께 쓰고 있는 이 소설의 결말을 잘 쓰기 위해, 우리는 지금 당장 비상사태에 처한 것처럼 대처해야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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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사태처럼 행동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국제 정세는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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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뼈대를 이루는 체제는 정치적으로는 주권을 가진 국민국가(nation-state),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이 두 체제는 서로 손을 맞잡고 있으면서도 주도권을 두고 다툽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중 체제 속에 있는데, 두 체제의 어느 쪽도 전 지구 차원의 지질학적·생물학적 문제를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개별 국가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미 세계를 아우르는 일종의 ‘약속’에 기반하는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유엔, WTO(세계무역기구) 등의 국제조약·기구 같은 체제들이죠. 문제는 이러한 체제의 근간이 되는 약속에 그다지 구속력이 없다는 겁니다. 경찰도 없고, 감옥도 없고, 벌금조차 없습니다. 그나마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자랑하던 WTO조차 (트럼프 대통령 주도의 관세 정책 이후) 그 이빨이 사실은 젖니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났고, 그마저도 이젠 뽑혀버렸어요. 이제는 각 국민국가들이 일종의 부족적 방식으로 제 이익만 챙기는 상태로 가고 있습니다. ‘믿을 건 내 가족과 내 부족뿐’이라는 이 감각은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원초적인 것입니다. ‘저 밖은 위험하고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감각과도 같아요.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길이 필요하니 우리 몇 가지 약속을 하자’라면서 시작된 유엔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을 지키는 것 외에 지금 우리에게 대안이 있나요? 신뢰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진 전부입니다. 앞으로 가지고 가야 할 전부이기도 해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작품에 낙관주의적 상상력을 끊임없이 심었던 H. G. 웰스(근·현대 SF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영국 작가, 편집자 주)의 그 뚝심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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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뢰를 회복하여 함께 위기에 대응해 나가기 위한 상상력이란, 결국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미래문해(Futures Literacy)’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SF)문학이 맡을 역할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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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우리는 각자 자기 삶 속의 SF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늘 자기 앞을 상상하고 미래성(futurity)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유토피아적 상상일 수도 있고, 디스토피아적 상상일 수도 있어요. 단, 새벽 2시에서 6시 사이에는 절대 자기 생각에 귀 기울이지 말기를 권합니다. 그 시간엔 뇌에서 결정적인 화학물질이 빠져 있을 때라서 사실 우리가 조금 제정신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어쨌든 좋습니다. 우리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미래를 상상하는 자질을 타고난 인간이고, 그것이 우리를 동물과 구분해 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문학이 다른 예술과 구분되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각 개인이 공동 창작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영화에서의 관객이 일종의 ‘목격자’라면, 책을 읽는 독자는 모든 장면을 각자의 상상을 통해 완성시켜야 하는 창작자입니다. 저는 특히 유토피아적인 상상과 희망을 담은 SF 작품을 통해 우리가 ‘나는 80억 개 벽돌 중의 하나’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긴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그래, 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일이 되지 않아. 나는 벽 속의 벽돌 하나일 뿐이고, 벽돌은 80억 개나 돼. 하지만 벽은 벽이고, 나는 내 몫의 짐을 질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요. 이것이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 같은 선배 작가들이 해 온 일이고, 제가 이어가고 싶은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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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MOST(Management of Social Transformations, 사회 변동 관리) 프로그램의 주요 관심사가 바로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새로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인공지능 혁명으로 사회가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고, 기술이나 자본의 영향력이 ‘인간’을 압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 상황에서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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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일을 하는 양쪽 뇌 모두를 적절히 사용할 때 우리는 온전한 정신을 가진 한 사람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 두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어쩌면 당연한 거예요. 그 두 부분을 아울러 타협된 합의를 만들어 내는 정확한 결단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역사와 철학을 아우르는 인문학, 문학을 포함한 예술, 이런 문화적 기억이나 문화적 상상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예컨대 이런 일이 생겨요. 한 명석한 젊은이가 컴퓨터 세계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어떤 묘수를 발견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이자 상업의 기회가 되죠. 그래서 좋은 결제 시스템을 가장 먼저 만든 사람, 좋은 쇼핑몰을 가장 먼저 만든 사람, 좋은 검색 엔진을 가장 먼저 만든 사람은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유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명석하다고 확신하고, 즉각적인 해법을 안다고 여깁니다. 자신이 천재라 생각하면서 어지간한 작은 나라만큼 많은 돈을 좌지우지하죠. 하지만 이들이 비윤리적이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문화와 교육이에요. 이 근간이 없으면 무언가 빠져버린, 거의 네 살배기처럼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아, 물론 네 살배기들은 명석해요.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매일매일 배울 수 있어요. 그럼에도 그들의 결정은 불충분한 데이터, 불충분한 장기적 사고에 근거하기 때문에 때론 우습습니다. 네 살 때는 그래도 귀엽지만, 마흔 살 때는 끔찍합니다. 인문학을 포함하는 문화적 지성(cultural intelligence)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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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에서 ‘폭력’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어쩔 수 없이 갈등이나 폭력이 필요하다는 통념도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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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평생 마음에 걸려 했던 중요한 지점을 건드리는 질문입니다. 저는 폭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주로 젊은 백인 남성들—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고, 이야기를 팔기 위해 갑자기 폭력의 전문가로 행세하는 일을 혐오합니다. 아주 격렬하게요. 이런 것에 무감각해지면서 “아, 그래, 이건 정상이지. 늘 보는 거니까” 하는 식의 문화로 굳어지는 게 걱정스럽습니다. 물론 제 작품에도 폭력이 나옵니다. 우리는 실제로 폭력이 있는 세계에 살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저 스릴을 위한 불필요한 폭력이나 살인에는 늘 맞서면서 평생 글을 써 왔습니다. 그런 것이야말로 현실의 왜곡이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평화를 위해 힘 있게 행동해야 하지만, 그것을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 자체가 흥미로운 이야기예요. 적어도 제게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살인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습니다. 너무 구식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맙소사, 무슨 종교 같은 얘기를 하고 있어”라고 말할 예술가도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흥미로운 이야기는 교훈(moral)을 담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그것은 이야기라기보다는 낱말맞추기나 비디오게임이라 해도 무방하겠지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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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만들어 주는 일이 오늘날의 교육 현장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시스템에서의 한계 또한 체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교실에서 잘 실행할 방법은 없을지, 조언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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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생들은 이른바 주의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들 하지요. 저는 사실 소셜 미디어 시대의 현대인의 정신에 관한 그러한 통념들이 다소 과장됐다고 봅니다. 인간은 여전히 깊이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고, 5천 쪽짜리 소설도 여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 공간(story-space)’을 뚫고 들어가 특정한 주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까요?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에요. 어쩌면 그것이 가르치는 일의 본질입니다. 교사가 된다는 일의 기쁨이자 좌절이기도 하죠. 정해진 규칙이 없고 정답이 없으니까요. 저는 그 모든 과정이 필연적으로 대단히 인간적인 일이라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구석기 시대, 심지어 가장 작은 형태의 공동체에서 생활했던 시절부터 갖고 있던 것들이 오늘날의 인간에게도 남아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생각해 보자는 거지요. 예를 들어 저는 어제 카르나크(Carnac)의 열석(列石)을 보고 왔는데요. 그곳엔 기원전 4000년부터 2000년까지 사람들이 하나씩 세운 거대한 돌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문자도 없던 시절에,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진 프로젝트 기반 작업이었어요. 분명 교육이 필요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그걸 해냈을까요? 밖으로 나가, 둥글게 둘러앉아, 다 함께 읽은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오늘날의 우리도 분명 물려받았을, 결코 변하지 않는 요소에 대한 이런 종류의 질문들이 교수법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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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가 가사를 바꿔 부른 '84억 지구', 우리는 이 안에서 행복한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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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구에 사는 사람이 모두 몇 명인지 맞혀보실래요?
추억의 '당근송' 속 "60억 지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2019년 BTS 'Mikrokosmos (소우주)' 가사 속 "70억 개의 빛"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BTS의 리더 RM은 지난 3월 컴백 무대에서 이 가사를 즉석에서 " 84억 8천만 명"으로 바꿔 불러 현실 고증을 재치있게 했다는 점이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죠.
매년 7월 11일은 '세계 인구의 날'이에요. 1987년 7월 11일, 세계 인구가 50억 명을 돌파한 날을 기념해 유엔이 제정했죠. 그때는 너무 빠른 인구 증가가 걱정이었는데, 지금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정반대의 고민이 떠오르고 있어요. 바로 '저출생'이에요.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출산율 저하와 '인구 붕괴(Population collapse)'에 대한 경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하지만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25 세계인구현황보고서』는 진짜 위기가 인구 '숫자'가 아니라, 청년들이 원하는 삶과 가족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선택권의 부재'에 있다고 짚어요. 인구 위기를 단순히 국가적 비상사태로만 볼 게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존중받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바로 세계 인구의 날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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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83억 명: 2026년 7월 현재 지구의 인구예요. 2011년 70억 명을 넘은 지 15년 만에 13억 명이 늘었답니다. 2030년에는 85억 명, 2050년에는 97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돼요
- 5명 중 1명: 기후변화, 전쟁, 팬데믹 같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원했던 것보다 적은 자녀를 낳거나, 낳지 않으려 한다고 답한 가임기 성인의 비율이에요
- 39%: 주거비, 양육비, 고용 불안정 등 경제적 이유로 원하는 만큼 자녀를 갖지 못했다고 답한 비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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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문제와 유네스코, 언뜻 멀어 보이지만 사실 깊이 연결되어 있어요. 유네스코 통계연구소(UIS)는 전 세계 200개국 이상의 교육 데이터를 추적하는 기관이에요. 인구가 변하면 학령인구도, 필요한 학교와 교사의 수도 달라지기 때문에, 유네스코는 인구 변화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오랫동안 연구해온 국제기구 중 하나랍니다. 실제로 한국처럼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학교의 통폐합부터 교사 수급까지 인구 데이터가 교육정책의 기초가 돼요. 유네스코는 '세계시민교육 (Global Citizenship Education)'과 '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을 통해 청년들이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단순한 '성 (性) 지식'을 넘어, 신체·관계·가족계획·인권까지 폭넓게 다뤄 스스로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출산이 줄어드는 진짜 이유가 '선택의 자유 부족'이라면,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권리야말로 그 출발점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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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 이야기는 뭔가 거창한 통계 얘기 같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예요. 누군가 아이를 갖지 않는 게 의지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래요. 비싼 집값, 불안정한 일자리, 부족한 돌봄 인프라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인구, 그리고 출생 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러니 오늘은 "왜 결혼을 안 해?",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 같은 질문 대신, 그 사람이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한번 물어봐 주는 건 어떨까요?
혹시 지금 누군가 '저출생 문제'를 단순히 숫자나 의지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다면, 이 글을 공유해주세요. 진짜 문제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해도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에 있다는 걸 함께 나눠봐요. 앞선 유네스코 Talks 인터뷰에서 킴 스탠리 로빈슨 작가가 말한 것처럼, 당신은 함께 이 지구를 지탱하고 있는 83억 개의 벽돌 중 하나예요. 그리고 그 83억 개의 벽돌, 83억 개의 삶 모두가 각각의 장벽을 마주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미래를 그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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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시범 운영 중인 스포츠 기반 세계시민교육 프로그램 ‘공존의 축구’가 능동고등학교에서 진행됐습니다. 프로축구 선수 출신 김호남 이사와 함께한 이번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축구를 통해 협력과 존중, 공존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며 세계시민의식을 키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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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사 60명 초청, 2026 일본교직원 한국초청연수 개최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7월 6일부터 12일까지 일본 교직원 60명을 초청해 ‘한일교사대화: 2026 일본교직원 한국초청연수’를 개최합니다. 참가자들은 한국 학교 방문과 한일 교사포럼 등을 통해 교육 현장을 공유하고, 미래 교육과 세계시민교육을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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